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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관악신문 2011-06-09] 오후 5:28:00 - 이강성 칼럼, 사양지심(辭讓之心) 양보하는 마음
  • 작성자 : 운영자
  • 작성일 : 2011-06-15
  • 조회수 : 1237

1) 예(禮)란 사양하는 것부터 시작하는 것입니다.

먼 옛날의 길은 모두 사람이 한명정도 다닐 수 있는 오솔길이었습니다. 이 오솔길에서는 사람과 사람이 만나면 서로 길을 양보해야 했습니다. 개울을 건널 때도 마찬가지로 사람이 한명정도 지나갈 수 있는 외나무다리, 징검다리였습니다.

이 오솔길에서 노인과 어린 젊은이가 마주친다면 누가 먼저 길을 양보하였을까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젊은이가 양보해야 한다.’ 라고 생각하시겠지요, 그러나 먼저 본 사람이 양보를 하는 것입니다. 노인이 젊은이를 보았으면 노인이 옆으로 몸을 돌려 부채로 얼굴을 가리고 젊은이가 건너갈 때 까지 서있습니다. 이때 젊은이가 건너가면서 노인에게 인사를 하고 가면 노인은 부채 밑으로 젊은이가 가는 것을 보면서 인사를 받은 후 건너갔습니다.

이와같이 우리민족에게는 사양하는 마음과 행동에 유구한 역사가 내려오고 있습니다. 옛날 성현의 말씀에 무사양지심 비인야(無辭讓之心 非人也) “사양하는 마음이 없으면 사람도 아니다.” 라고 하였습니다. 짐승들은 먹잇감을 얻으면 더 많이 먹으려고 싸움을 합니다. 그러나 사람은 이웃 간이나 친구 간에도 먹을 것이 있으면 먼저 드시라고 권합니다. 이와 같이 사람이기 때문에 사양하는 마음이 있는 것이고 사람이기 때문에 사양을 실천해야 하는 것입니다. 특별히 우리 민족은 버스나 전철에도 노약자석이 있고 노약자에게는 자리를 양보하여주는 유구한 사양지심이 이어져 내려오고 있습니다. 우리는 동방예의지국의 자랑스러운 국민인 것입니다.

사양은 삼사양이라고 합니다. 삼사양의 의미는 세 번 사양하라는 뜻입니다. 어른이 먹을 것을 주셨다고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받아먹으면 안 됩니다. “먼저드십시오, 괜찮습니다” 라고 사양을 하여야 합니다. 그러나 세 번 이상의 사양은 예가 아닙니다.

2) 옛날 가정교육의 사양지심

우리가 어렸을 때 이웃에서 떡이나 과일 등 선물이 들어오면 어른이 오신 다음에 어른께 먼저 드리고 아이들이 먹었습니다. 아무리 먹고 싶어도 아버지가 들어오시지 않으면 어머니는 절대로 그 선물을 아이들에게는 주지 않으셨습니다. 여기에서 알 수 있듯이 어른이 먼저인 것입니다. 어른을 공경하는 어린이들은 커서도 자연스럽게 위계질서의 사양지심을 알고 실천하는 생활인이 됩니다.

지금은 너무 빠른 시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교육 또한 빨라지고 있습니다. ‘빠르다’ 라는 것은 신속하다는 뜻이지만 이것은 자칫 양보할 줄 모르고 자기만 먼저 가려는 경쟁으로 가기 쉽습니다. 이렇게 되면 양보하는 마음은 생각조차 할 수 없게 되지요. 교육은 아무리 강조해도 가정교육만큼 위대한 것이 없습니다. 가정 내에서 조급하게 서두르는 교육을 한다면 옆을 보고 뒤를 돌아볼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생기지 않기 때문에 곧 남을 배려하고 사양하는 마음이 생기지 못하게 됩니다. 사양하는 마음을 실천하기 위해서는 여유를 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또한 지금은 다양화시대이기도 합니다. 다양화시대 일수록 넉넉한 여유의 훈련이 필요합니다. 각박함은 곧 다툼의 길로 가게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 관악예절원에서 교육을 받는 어린학생들은 예절원 건물과 우리 선생님만 보더라도 자연스럽게 사양지심이 나오나 봅니다. 인솔하신 선생님들 중 걱정을 무척 많이 하고 오시는 선생님들이 계십니다. 바로 장난꾸러기 학생들 때문입니다. 그런데 의외로 입소하자마자 누가 말도 하지 않고 가르치지도 않았는데 의젓하게 잘 하는 학생을 보고 선생님들께서 깜짝 놀라시곤 합니다. 이것을 무언이치(無言而治)라 하는 것인데 말 없이 다스려지는 것을 뜻합니다. 무언이치가 가능 한 이유는 인간이 환경의 변화에 적응되기 때문일 것입니다.

아이들의 미래, 청소년의 미래는 곧 우리 기성세대의 책임에서 새로운 산물로 태어난다는 것을 항상 잊어서는 안 됩니다. 관악예절원의 밝은 정기를 받아 큰 사람이 많이 나오길 간절히 바라면서 저희 선생님들은 어린 학생들의 밑거름이 되겠음을 오늘도 다시 한번 굳게 다짐합니다.

관악예절원 부원장

관악신문(gtime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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